[설교] 2017년 12월 31일 –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노스욕 한인 교회 주일 설교
2017년 12월 31일

빌립보서 3 : 12 – 14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송만빈 목사

빌립보서 3 : 12 – 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녹음 상태가 좋지 못하여 설교문으로 대체합니다. 죄송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2-14)

늘 이 맘 때가 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타락 이후 인간이 사는 이 세상에서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적이 과연 한번이라도 있었을까요?
정확히 언제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고 타락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타락 이후 인류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아갔던 적은 한 해도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작게는 우리의 가정, 직장, 교회에도 갈등과 반목, 어려운 일들이 늘 존재해 왔어요.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2017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그리고 희망찬 새해를 기다린다고는 하지만, 내년 역시 다사다난할 것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는데,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내년이라고 해서 올해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가 있지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힘들고 지치고 고단할 때, 우리 혼자 그 시간들을 지나온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고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다 나은 내일을 소망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제 9시간 정도만 지나면, 2017년은 묵은 해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텐데,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할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잊어야 할 것과 잡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13절 하반절을 보세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라고 말하고 있죠.
잊어버려야 할 것은 뒤에 있는 것, 즉 지난 날입니다.
그리고 잡아야 할 것은 앞에 있는 것, 다가올 미래입니다.
먼저, 잊어야 하는 것을 잊는 것이 신앙의 여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물론 지나간 과거의 것들을 모두 다 잊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총,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와 같은 것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마음에 새겨서 간직해야 할 것들입니다.
잊어야 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와 고통 그리고 무엇보다 죄입니다.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과거의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계속 얽매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중요한 신앙의 각오와 결단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요.
무엇인가에 묶여 있기 때문에 결심한 것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사실, 잊어야 하는데, 좀처럼 잊혀지지 않아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성경을 읽다 보면 이런 예들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이사야 43:18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자부심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는 것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나라에 의해 멸망 당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실제로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는 것으로 성취되잖아요.
그리고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되지요.
이 일들은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훗날 겪게 될 이 엄청난 고통을 아셨기 때문에, 회복의 메시지와 함께 이 말씀을 주셨던 거에요.
훗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현실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그들의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과거의 상처가 그들을 괴롭혔을 거에요.
불안감 그리고 죄책감과 절망 가운데 하루 하루를 보냈을 겁니다.
이렇게 과거에 범했던 죄로 고통스러워하며 괴로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했을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었겠어요.
사도 바울은 어떤가요? 그에게는 잊고 싶은 과거의 상처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바로 앞에 나오는 6절을 보세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교회를 핍박할 정도로 종교적 열심이 엄청났었다고 자신의 과거를 밝히고 있는데, 자랑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감추고 싶은, 잊고 싶은, 지우고 싶은 과거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밝히고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었겠어요?
그가 그렇게 핍박했던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이후, 예수님의 보혈로 그의 죄가 모두 씻겨짐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이전 일을 기억하지 않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갇혀 지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유하심의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우리 영혼이 자유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요한일서 1:7,9입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네! 이 진리가 우리가 이전 일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되는 거에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간에게는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 빨리 잊어야 할 것은 오래 기억하고, 그 반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타락한 인간의 죄성으로 기인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잊어야 할 이전의 일을 잊지 못하고, 그로 인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잊어야 할 것들을 속히 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런데 우리가 잊어야 할 것은 단지 우리의 잘못과 죄만 아닙니다. 중요한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룬 성공입니다. 우리가 성공한 것들, 가능하면 계속해서 붙잡기를 원해요.
성공이 가져다 주는 만족감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루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만족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해이해지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상실하게 되어서 현실에 안주하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이 12절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주의 깊게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들이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하늘에서 얻을 상급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이제껏 이루어 놓은 일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아무리 땀과 정성 그리고 수많은 희생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잊어버리겠다는 말이에요.
네! 뒤에 있는 것은, 그것이 죄와 잘못이 되었든 성취와 성공이 되었든 상관없이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에 묶여있고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것에 연연하며 앞에 있는 것을 잡을 수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잡아야 할, 앞에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먼저 잡는다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잡는다’라는 단어는 ‘지속적인 집중’을 의미합니다.
마치 달리기 선수가 달리기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 집중해서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달리기 선수가 관중들을 쳐다보고 경쟁자가 어느 만큼 뒤에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력질주를 할 수 없겠죠. 그러면 우승할 수 없습니다.
달리기 선수는 집중해서 결승점을 향해 달려야 해요.
이것이 ‘잡는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우리가 달려가야 할 길은, 한가하게 소풍 가는 길이 아닙니다. 세상의 이것 저것에 한눈 팔면서, 한 발은 세상에 걸치고 다른 한 발은 교회에 걸치는 식으로 가도 되는 길이 아니에요.
그 길은 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야 하는 좁은 길입니다. 푯대를 향해 집중해서 달려가야 하는 길이에요.
14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가 잡아야 할 앞에 있는 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는 푯대입니다.
그렇다면 부름의 상이라는 푯대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10-11을 보면,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 바울이 잡으려 했던 부름의 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었어요.
부활하는 것,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궁극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겠다는 것, 아니겠어요?
사도 바울의 푯대는해 아래의 것이 아닌 해 위의 것이었어요.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닌 하늘나라였습니다.
썩어져 한줌의 흙이 될 육신의 것이 아닌 영원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날마다 좇았고 추구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삶에 적용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푯대가 하늘나라이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영생이라면, 이 땅에서 잠시 겪게 되는 고난과 어려움들이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가는 길을 방해하는 거침돌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그것이 우리 신앙의 진보를 위한 그래서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주님을 더 닮아가게끔 하는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집필한 장소가 어디였나요? 감옥입니다. 자유와 미래가 박탈당한 감옥이었어요.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거침돌이라고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 갇힌 것을 거침돌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디딤돌로 여겼습니다.
우리 역시 살다 보면 실망할 때도 있고 좌절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감옥에 갇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롬 8:28에서 사도 바울이 선언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세요.
세상은 성공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아는 것으로, 일에 대한 많은 보상을 받는 것으로, 삶의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다릅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내어주실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보물처럼 여기시기에, 우리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우리됨은 세상의 가치 체계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눈으로, 하늘나라라는 푯대를 향해 지속적으로 집중해서 달려가는 믿음의 발걸음으로 결정되는 거에요.
바라기는, 하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세상의 허탄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을 바라보는 그 부름의 상을 향해 우리의 눈과 마음을 고정하십시다.
세상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망년회를 가집니다. 한 해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 얽히고 설킨 대인관계의 갈등들을 술을 마시며 ‘망년’, 즉 한 해를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이전 일들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실 순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우리에게도 마셔야 할 술이 있긴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성령의 술입니다.
세상 술은 방탕하게 만들기 때문에 술 취하지 말아야 하지만, 성령의 술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세상의 술이 아닌 성령의 술로 지나간 과거의 잘못과 죄를 잊어야 합니다.
성령의 술을 마시며 하나님과 함께 망년회를 해야 하는 거에요.
이제 9시간도 채 남지 않은 2017년, 이 한 해를 정리하면서 내 힘으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된 생활과 믿음의 진보를 이룰 수 없기에 성령충만 받기를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잊어야 할 지난날의 잘못과 죄 그리고 상처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름의 상으로 주신 영원한 하늘나라와 부활의 소망을 붙잡으며 믿음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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