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년 12월 24일 –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2017년 12월 24일
노스욕 한인 교회 주일 설교

고린도후서 9 : 15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 송만빈 목사

고린도후서 9 :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녹음 상태가 좋지 못하여 설교문으로 대체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 고후 9:15은 여덟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구절의 말씀입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 말로는 은사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으로는 선물이라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
선물이라는 단어, 언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지요.
그리고 선물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탄절 때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신세졌던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으례히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정이 오고 가고 감사가 오고 가는 것은 당연히 있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서 말할 수 없는 선물,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귀한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있냐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껏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무엇인가요?
혹시 기억에 남는 선물이 없다면, 이런 선물은 어떻습니까?
이번 성탄절에 어느 누군가로부터 BMW 700 series와 같이 10만불을 훌쩍 넘기는 고급 자동차를 선물 받는다면, 여러분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될까요?
아니면 만불이 넘는 에르메스 명품 가방은 어떻습니까? 이 가방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몇 달은 기다려야 구입할 수 있는 가방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이나 저나 이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런 선물을 받을 때의 기분이 어떠할지 가늠을 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이렇게 비싼 선물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평생 잊지 못할 감격스러운 선물은 아닐 겁니다.
왜 그런가요?
그 이유인즉슨, 이 세상에는 우리가 흔히 접해보지 못해서 그렇지, 값비싼 물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몇가지 예를 드리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데, 3십만불이 넘는 변기가 있다고 합니다.
변기 seat이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고 변기 자체도 엄청 비싼 돌이라고 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공원에서 흔히 가지고 노는 프레스비, 18,000불짜리가 있습니다.
10,000불짜리 요요가 있고, 27,000불짜리 선글라스도 있습니다.
따라서 돈이 없어서 문제이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것들이 많고, 실제로 우리에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 비싼 물건들이어도, 어느 누군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구입할 수 있어요.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귀하고 비싼 것이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이런 이유로, 이 세상의 그 어떤 선물! 그것이 아무리 비싸고 희귀하다 해도,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선물은 될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선물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어야만 합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9장 앞부분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인간의 선물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헌금을 마련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선물인 거죠.
그런데 9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14절부터 사도 바울의 관심사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절 하반절에,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선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사, 선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힘들게 마련한 헌금이라는 인간의 선물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선물로 주제를 바꾸는 것일까요?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이 정성껏 준비한 선물에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던 ‘말할 수 없는’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선물에는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인간의 선물은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대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1절을 보세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구제 헌금을 마련한 고린도 교인들의 정성, 참으로 고마운 것이기 때문에,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0, 11절을 보시면, 너희들이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심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어요.
이는,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이를 통해 성도의 삶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서 헌금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선물을 고린도 교인들이 이미 받았다는 겁니다.
결국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고린도 교인들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금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성탄절이 왜 기쁜 날입니까? 왜 복된 날인가요?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날이기 때문에 성탄절이 기쁜 날이고 복된 날입니다.
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어두움에 갇혀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인생,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인생, 영벌을 피할 길이 없었던 인생이, 빛으로 나아올 수 있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고, 영생의 복락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선물 중에서도, 이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가장 완벽한 선물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솔직히 우리가 어떻게 동정녀에게서 난 아기 예수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나요?
더럽고 추악한 인생 한가운데로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셔서 죄인들과 동고동락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제한된 지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묘사하며,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그래서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어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말로도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성품과 사역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다 소유하신 분이에요.
그런 분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으니 예수님이어야 말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선물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선물이라고 말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선물인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신 일들을 보면 됩니다.
천사들이 한밤중에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눅 2:11입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는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고…
여러분은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 그 선물로 인해 감동하게 됩니까?
나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선물한 사람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알아서 줄 때이지 않습니까?
나를 이렇게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 선물을 통해 드러나게 되니까 감동을 받는 거에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는 구원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그 중요성을 모릅니다.
당연하지요. 믿음이 없는 상태인데, 은혜 받기 전인데, 구원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말씀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가 구원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구원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먼저 아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구원을 이루셨고 그리고 그로 인해 구원의 선물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를 알아가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보셨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물이 아닙니다.
더 좋은 학교, 더 나은 직장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구원을 성취해 주실 구세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주의 나심이라는 선물을 허락하신 겁니다.
구주 나심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함이에요.
그러니 이 은혜를 감히 어떻게 우리의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어떤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어요.
예수님이 왜 우리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귀한 선물인지 한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대개 선물을 누구에게 하십니까? 서두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보통 고마운 사람들에게, 신세졌던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합니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선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성탄절 즈음이 되면 길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작은 정성을 넣습니다.
어떤 익명의 독지가는 1억짜리 수표를 자선냄비에 넣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사람 사는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하는 겁니까? 아무런 이유 없이 하는 것이겠습니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양심의 소리를 들어서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빚진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네! 우리에겐 빚진 마음이 필요해요. 인간이 인간다워지려면, 이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탐욕과 경쟁의 굴레 안에 갇히기 쉬운 이 세상에서 그나마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빚진 마음이 있어야 하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진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것이 많으면 많았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진 것은 없어요.
주님을 믿는 우리의 모습만 봐도,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자리, 불순종의 자리에 설 때가 얼마나 많나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에게 빚진 것이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 아니 우리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셔도 될 하나님께서 뭐가 아쉬우셔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삯을 예수님께 전가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하신 건가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 5:8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주신 것은, 우리 인간이 빚진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선을 베푸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덮어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거에요.
예수의 피로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덮으셨고 심지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마저 덮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통해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거에요.
그런데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미국에 있는 어느 대학 교수가 학생 40명에게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 하나씩 적으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선물, 캐롤, 카드를 적어낸 반면에,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적어낸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성탄절의 본질이 점점 사라지고 껍데기만 화려하게 포장되어 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실제적으로 1년 중 교통사고가 제일 많이 나고, 절도 강도와 같은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며, 심지어 사생아가 가장 많이 생기는 때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은 이러한 세태를 가리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주기도문을 ‘최대의 순교자’라고 말한 것에 빗대기도 했는데요.
마틴 루터가 주기도문을 최대의 순교자라고 말한 이유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주기도문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주기도문을 마치 주문마냥 외웠지, 주기도문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주기도문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루터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그 당시 최대의 순교자라고 말했던 겁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성탄절이 이 시대 최대의 순교자는 아닌가요?
성탄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1년 중 최대의 할리데이입니다.
흥분되고, 설레이고, 기대에 부푼, 성탄절의 독특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정작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선물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날이 성탄절인데, 주신 선물에는 관심없고 성탄절이라는 껍데기에 관심과 신경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여기에 계신 여러분과 저만큼은 성탄절을 이 시대 최대의 순교자로 만들어서는 안되겠지요.
성탄절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선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날이지요.
오늘 우리는 성탄주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바라기는, 고후 9:15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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