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년 6월 3일 – 하늘 시민답게 믿음 위에 견고히 서라

노스욕 한인 교회 주일 설교
2018년 6월 3일

빌립보서 3 : 17 – 4 : 1
“하늘 시민답게 믿음 위에 견고히 서라”

– 송만빈 목사

빌립보서 3 : 17 – 4 : 1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설교문으로 대체합니다.)

하늘 시민답게 믿음 위에 견고히 서라 (빌 3:17-4:1)

미국의 어느 도시에 있었던 실화를 소개 드립니다.
평생 신실하게 믿음을 지켰던 여성도가 4명의 아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을 바라보면서 작별 인사를 하게 되는데, 첫째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Good Night 이라고 인사를 한 반면, 넷째 아들에게는 Good Bye라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형들과는 다른 작별인사를 받은 넷째 아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어머니, 이상하시네요. 왜 형들에게는 작별인사로 Good Night하시고 제게는 Good Bye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그 여성도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막내야, 네 형들은 지금 헤어져도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단다. 그래서 Good Night이라고 인사를 한 거란다. 하지만, 너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고 그러니 이제 헤어지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마음은 무척 아프지만 너에게는 Good Bye라고 인사할 수밖에 없었단다.”
이 말을 들은 막내아들은 자기 어머니 손을 붙잡으면서 말합니다. “어머니, 저도 이제 예수 믿을게요. 그러니 저에게도 Good Night 또 보자고 인사해주세요.” 그러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여성도는 그제서야 기쁨의 미소를 띄우며 “Good Night! 천국에서 만나자! 사랑하는 아들아!” 작별인사를 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우리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보내거나 우리가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떤 인사를 하기 원하십니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Good Night하실 건가요?
아니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Good Bye라고 인사하실 건가요?
당연히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기에 “Good Night!”하기를 원하시겠지요.
이 바램은 사도 바울에게도 있었던 바램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언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빌립보 교회를 다시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아주 각별한 교회입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이거든요.
게다가 바울의 복음 전파를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교회였어요.
4:1을 보면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데요.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를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인 거에요.
너무나 사랑하기에 꼭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설령 이 땅에서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천국에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잖아요.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조금 이상해졌다는 거에요.
입술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믿는 사람답지 못한 모습들이 많은 겁니다.
바울이 이 사실을 알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심정으로 예수님 안에 굳게 서야 한다는 권면을 하고 있는 거에요.
4:1절을 다시 보면 “이와 같이 주안에 서라”고 사도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데, 믿음에 굳게 서야 천국에 갈 수 있고,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지요.
이렇게 믿음에 굳건히 서야 할 사람들은 비단 빌립보 교회 성도들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또한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흔들릴 때가 많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인 빌 3:17-4:1을 통해 그 비결을 함께 배웠으면 합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첫 번째 비결은 본 받을 것은 본 받는 것입니다.
3:17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 여겨 보라.”
여기서 나는 사도 바울 자신을 가리킵니다. 즉, 바울은 지금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인데요.
문자적으로만 읽는다면, 바울이 교만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그 당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이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먼저 믿은 사람들, 사도들이나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사람들로부터 듣고 배우는 것이었어요.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자기를 본 받으라고 말한 겁니다.
고전 11:1을 보면, 바울은 이 점을 보다 더 자세하게 언급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나는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 여러분도 나처럼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힘쓰라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지요.
우리를 본받고, 우리를 본받는 사람들도 눈여겨보라고 말하고 있어요.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이겠어요? 바울과 함께 사역한 사람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이 두 사람은 바울을 본받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간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배우는 것이요,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겐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필요한 거에요.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선 당연히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배우는 것도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한 야구 선수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어떤 일부터 해야 합니까?”
이에 목사님은 그 선수에게 묻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한 시간만 내가 가르쳐준 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그는 대답합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네요.”
목사님이 가르쳐 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15분은 기도하고 15분은 성경을 묵상하며, 15분은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15분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었어요.
이 선수가 대단한 것은, 이 말을 들은 그때부터 이 교훈을 실행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훗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복음 전도자가 됩니다. 다름 아닌 빌리 선데이인데요.
네! 배울 것을 배우고 본 받을 것을 본 받을 때 우리의 믿음이 견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본받음으로 예수님을 닮아 가시길 바랍니다.
둘째는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 본받지 않는 겁니다.
18-19절입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읽혀집니까?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대상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중에,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원수, 다시 말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입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이 보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19절을 제가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에겐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를 뭐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나요?
주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배를 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만족, 자기 이익, 자기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래요.
이런 자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고,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대단한 영광인줄 착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부끄러워지고 겸손해져야 정상인데,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리고 땅의 것만 생각합니다.
위엣 것을 추구하는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믿음의 삶보다는 땅에 것. 세상 것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 마음이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본받지 말아야 할 모습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굳게 서기를 원한다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행동을 철저히 버려야 해요.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살다 보면 종종 나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지요.
이유 없이 욕을 하고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대부분 받은 대로 되돌려주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은 상대방이 한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나쁜 짓을 나도 똑같이 하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이런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본능적 행동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로마서 12:2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네!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은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 된 행실은 결코 본받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은 본받지 않는,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은 따라가지 않음으로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키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늘 시민이라는 사실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해서는 내가 하늘 시민이라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20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이 왜 좋습니까? 예수 믿어서 얻게 되는 복이 무엇입니까?
몇 년 동안 우리 교회 성도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해 왔던 기도제목 중 하나가 영주권 취득입니다.
감사하게도 영주권을 신청한 가정들이 medical issue와 같은 문제만 아니면 영주권을 취득할 겁니다.
기다리는 것이 힘든 것이지,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단계까지 온 거에요.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주권 신청 자격 요건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영어공부 하느라 마음 고생을 많이 했던 집사님이 한 분 있습니다. 바로 조현우 집사님입니다.
늘 웃으며 열심히 준비하기는 했지만, 초조했을 거에요.
저 역시 “하나님께서 언제 조 집사님 가정에 영주권의 문을 열어주시려나? 다른 분들은 다 열어주셨는데…”
그런 초조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거든요.
그런데 몇 주 전에 조 집사님이 제게 “회사에서 영주권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합니다”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어요.
어느 누구보다 영주권을 힘들게 취득한 저로서는 그 소식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네! 캐나다에 정착해서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기쁘고 귀한 하늘의 시민권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값없이 주셨어요.
우리는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들입니다.
우리가 정착할 곳은, 오래 살아야 백 년을 사는 이 땅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영원히 살아갈 하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몸은 이 땅 위에 놓여있어도 우리의 관심은 천국에 두는 것이 마땅한 겁니다.
한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1절입니다.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믿음의 삶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아요.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믿는 부활의 신앙을 품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소망과 확신이 있어야 주님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있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 안에 굳건히 서시기를 바랍니다.
본받아야 할 것을 본받기 위해 힘쓰시고,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은 철저하게 끊어버리세요.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 주님을 잘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본받기를 힘쓰세요.
무엇보다 하늘 시민이라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품으며, 영광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그래서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게 서는 사람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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